2026/04 51

“당신은 그 말을 하고 난 뒤의 결과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흔히 우리는 자라면서 거짓말을 하는 법을 배운다.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거나 벗어나야 할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한 거짓말은 어느 순간 본능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것이라 배웠지만, 현실 앞에서는 쉽게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우리는 거짓말을 배우기 이전에, 먼저 ‘숨기고 싶은 마음’을 배운다. 거짓말은 그 감정을 가장 빠르게 덮는 방식일 뿐이다. 작은 회피는 가볍지만, 그것이 반복되는 순간 태도가 되고, 결국 한 사람의 신뢰를 규정짓는다.아내가 어린이집을 운영할 때였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들의 연령은 대개 3~6세가 중심을 이룬다. 하루는 한 학부모 어머님에게서 항의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에 있었던 아이..

카테고리 없음 2026.04.30

가난을 지나온 사람은 무엇이 남는가—버티던 삶이 결국 나를 어떻게 바꿨는가

가난을 지나온 사람은 무엇이 남는가—버티던 삶이 결국 나를 어떻게 바꿨는가어릴 적 나의 기억 속에는 빈곤과 가난이라는 단어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월세방, 그리고 일수돈 단칸방으로 정의되는 가정환경에서 부모님의 장애까지 겹친 생활고는 어린 시절을 잊게 만든 고통과 흔적이었다.그 조건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삶 전체의 구조를 결정짓는 무게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밝은 장면보다 버티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시절의 삶은 살아간다기보다 견딘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가난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공기처럼 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하루를 버틴다는 말이 곧 삶의 방식이었고, 미래라는 단어는 손에 닿지 않는 거리의 풍경처럼 느껴졌다.어린 나에게 내일은 기대가 아니라 불확실함이었다.하루하루 먹고 살아야..

카테고리 없음 2026.04.29

매가 사라진 자리에, 결국 법이 들어왔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선생님에게 매를 맞고 자랐다. 내또래 아이들은 다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 시절 교실은 배움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통제의 공간이었다. 침묵과 긴장이 공기처럼 깔려 있었고, 아이들은 이유보다 결과를 먼저 배우고 있었다.그 당시 선생님들은 대부분 막대자루 하나는 가지고 다니셨다. 이 막대는 칠판에 기록한 수업 내용을 확인시키는 도구였고, 때로는 매의 막대기로도 사용했다. 교실 앞에 세워진 그 막대는 도구가 아니라 가능성이었고, 그 존재만으로도 이미 교실의 분위기를 규정하고 있었다.학습과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매를 맞았다. 때로는 개별적인 벌도, 가끔은 단체로 벌을 받았다. 체벌과 매는 학교생활의 일부였다. 이유는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잘못은 설..

카테고리 없음 2026.04.29

"사라진 도시락, 더 교묘해진 격차”

지금처럼 학교급식이 무상급식이 아닌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때부터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 하는 학습생활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오전 수업만 진행되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수업이 오후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단순한 시간표의 차이가 아니라, 생활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시작점이기도 했다.학교 도시락은 집에서 싸서 다녀야 하는, 아주 귀찮고 짐이 되는 물건이었다. 아침마다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하루 종일 가방 속에 넣어 다녀야 한다는 점이 더 부담이었다. 가방의 무게보다 더 크게 느껴졌던 것은, 그 안에 담긴 ‘차이’였다.중학교 때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젓가락을 들고 맛있는 반찬을 싸오는 친구의 반찬통을 공략하러 뛰어다녔다. 한마..

카테고리 없음 2026.04.28

맛있는데 왜 망할까 — 당신이 놓치고 있는 단 하나

사람은 가게를 기억하지만, 나는 한 가게의 ‘침묵’을 기억한다.그 침묵이 나를 멈춰 세운 단골 밥집이자 술집이 있다. 그 집은 후배가 사는 집 바로 아래에 있는 가게다.오늘도 저녁을 먹기 위해 후배와 함께 집을 나섰다. 집 앞에 차를 세우는 순간, 익숙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곳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단골집으로 가자고 했다.하지만 후배는 이미 낮에 그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했다.하루 두 번은 부담스럽다는 말.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순간이었다.발이 먼저 멈췄다.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은 공기.가게 안을 보는 순간, 이상함은 더 분명해졌다.늘 있던 소리들이 사라져 있었다.손님이 없었다.조용한 게 아니라 비어 있었다.그 가게는 오래전 단골이었던 커피숍 사장님이 새..

카테고리 없음 2026.04.28

세 번의 실패가 나를 참모로 만들었다

나는 사업가체질은 전혀 아닌것 같다.스스로를 돌아볼수록 그 판단은 감정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결론에 가까웠다.이야기는 오래전의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때의 선택 하나가 지금의 나를 설명해주는 기준점이 되었다.장인어른이 사업을 하실 초창기때 일이다.공장에는 늘 기계 소리와 사람들의 긴장감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사위인 나는 손위처남 보다도 나이가 많고 사회경험 그리고 기본적인 관리경험이 있기에 장인어른은 슬쩍 장인어른 일을 맡아서 하던지, 아니면 지금의 사업은 전망성이 없는 분야라 자네가 잘 알고 있는,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한번 해 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선사례를 쳤다.그 순간 머릿속에는 가능성보다 실패의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아버님 저는 리더가 되기 어렵습니다.그 말은 겸손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

카테고리 없음 2026.04.26

우리는 왜 ‘이모’는 부르면서, ‘고모’는 부르지 않을까

이모와 고모의 차이, 사회생활 속에 녹아 있는 명칭식당에 가면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있다.“이모, 여기 주문 좀 받을게요.”말은 짧고, 생각은 없다.그저 익숙함이 먼저 튀어나온다.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나이가 조금 있는 여성 종업원을 ‘이모’라고 부르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선배들이 그렇게 불렀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따라 불렀다. 그렇게 이 호칭은 이유도 모른 채 몸에 붙었다.그날도 비슷한 상황이었다.작은 식당, 점심시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이모, 물 좀 주세요.”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가져다주었다.짧은 눈맞춤이 있었고, 그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익숙함이 스쳐 지나갔다.우리는 서로를 모르지만, 그 호칭 하나로 관계는 이미 정리..

카테고리 없음 2026.04.26

월급은 올라간 것이 아니라, 줄어드는 법을 먼저 배우는 것이었다

퇴직하기까지 월급의 변화를 몸으로 받아 들이다.조선소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한 달 뒤 첫 월급을 받았다.1983년 9월, 수습기간 월급봉투에는 이름, 사번, 수령금액과 내역이 적혀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벌어 받은 돈이었다.봉투를 열기 전과 후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숫자보다 먼저 손의 떨림이 왔다.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속내의를 드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나 역시 속내의 세트를 사서 드렸다.돈은 내 것이 아니라, 이미 먼저 가야 할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3개월 수습이 끝난 뒤 월급은 21만원이었다. 나는 그중 12만원을 재형저축 3년 만기에 넣고 나머지로 생활했다. 어떤 달은 1만원으로도 버텼다.남는 돈으로 사는 방식이 아니라, 남기기 위해 사는 방식이었다.식사는 회사식당에서..

카테고리 없음 2026.04.24

정해진 가격, 지켜야 할 선

세상엔 나름대로 정해진 가격이 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자동차회사에 재직 중의 일이다단순한 구매 업무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회사의 숨결과 누군가의 생계가 함께 묶여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깊이 보지 못했다.내가 맡은 업무 중 주요 업무는 회사 살림에 필요한 비품 구입이었다. 어떻게 보면 회사의 살림을 사는데 필요한 식당, 피복, 안전화, 책상의자, 컴퓨터, 복사지, 볼펜 등 사무용품을 망라한 일을 맡고 있었기에 원가절감에 대한 노력은 제일 큰일이었고 구매 시 지출되는 금액은 수억원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절약해도 몇천만원, 몇억원을 절약할 수 있기에 구매 시 복수 견적은 기본이고 대부분 4개 이상의 업체의 견적을 받아 최저가 업체를 선정해서 품의를 받아 집행을 하는 일련의 일들로 이루어졌다.숫자를 줄이는 ..

카테고리 없음 2026.04.23

기준으로 사람을 재단할 것인가, 이해로 관계를 만들 것인가

가정교육이 대해서난 자라면서 가정교육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아 어니었다.이것은 사회생활하면서 까지도 모르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사회생활에서는 가정교욱이 어쩌니 마니 하는 단어들이 오갈 일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은 미세한 차이는 느낄수 있었다.상대편의 말투 .행동 그리고 생각하고 있는 가치관들을 통해서 나는 견눈질로 보며 사회생활을 했다고 할수가 있다. 자칫 실수라도 하여 나의 불우했던 잘못된 가정환경이 드러날까 두려웠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곁으로 보여주는 가식행동의 행동일뿐이었고 얼음장을 걷듯 조심스런 날들의 연속이었슴은 어쩔수가 없었다.보이지 않는 기준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늘 긴장을 동반한다. 드러나지 않게 맞추려는 노력은 결국 자신을 지우는..

카테고리 없음 2026.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