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 135

속도는 빨라졌지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개인용 차량에 대한 기술발전과 삶에 대한 비교·회상 나는 처음 차를 대했던 것은 조선소 시절,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몇몇 직원들과 공동으로 구입한 포니 중고차였다. 순수 운전연습용으로 맨땅에 도로주행 선을 그어 놓고 처음 운전대를 잡았다. 액셀을 밟아 차가 움직이던 그 순간은 정말 신기했다. 맨땅 위에 그어 놓은 서툰 선을 따라 움직이던 차는, 내 세계를 처음으로 넓혀주고 있었다. 조선소에서는 개인 시간이 거의 없었기에 면허 취득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89년 8월, 서울에서 3개월 머물 기회가 생겼고 그때 도전했다. 상계동 시험장에서 필기를 통과하고 ‘야매’ 교습으로 실기를 준비했다. 코스 2번, 주행 2번 탈락 끝에 5번째에 합격했다. 손에 쥔 면허증은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

인생에세이 2026.03.31

시간이 만든 명품, 사람이 되는 길

명품지갑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사용한 볼펜과 만년필은 국민학교 때 쓰던 연필과는 분명 다른 세계였고, 그것은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라 ‘가치를 드러내는 물건’이었다. 누구나 하나쯤 갖고 싶던 파커 볼펜과 만년필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학교 앞 노점에서 그것들을 바라보던 시간은 물건이 아니라 ‘동경’을 쌓아가던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쉽게 가질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물건의 가치는 더 크게 느껴졌다. 하나라도 가지고 있으면 집이 잘 사는 친구로 보였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부의 기준이 되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직장생활을 하며 처음 산 니콘 필름카메라는 월급의 세 배가 넘는 고가의 제품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수준’을 사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에세이 2026.03.31

운명이 바뀐 취미, 함께여서 완성된 삶

조선소에서 취미생활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어릴 적 삼촌 집에 가면 보았던 낯선 테니스 라켓을 보고서 알게 된 것이 테니스라는 운동이었고, 마침 고등학교에도 테니스장이 한 면이 있었기에 그냥 재미 삼아 몇 번 쳐본 기억이 전부였다. 그때는 그저 낯설고 멋있어 보이는 물건에 불과했지만, 그 기억이 훗날 내 삶의 방향을 바꿀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조선소에서의 생활은 아주 단조로웠다. 일이 전부였고, 가끔 쉬는 일요일에도 그다지 취미로 할 것이 별로 없었다. DSLR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 촬영을 취미로 하기도 했지만, 돈이 많이 드는 문제로 가끔 출사 정도에 그쳤다. 일과 일 사이의 공백은 길었지만, 마음을 채워줄 무언가는 늘 부족했다. 그래서 더더욱 무언가에 몰입하고 싶은 갈증이 쌓여갔다.아파트 단지마다 ..

인생에세이 2026.03.30

걷자, 도시가 말을 걸었다

대구 도심 관광투어를 하며 느낀 것은, 우리나라도 관광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면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처럼 충분히 경쟁력 있는 관광국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직접 걸으며 확인한 확신에 가까웠다. 친구 부부와 함께한 대구 시내 투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도심의 밀도였다. 중심가에는 50층이 넘는 고층 건물들이 하늘을 가르듯 솟아 있었고, 그 수직의 풍경이 도시의 방향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사이를 걷다 보니 이해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높이 솟은 빌딩 사이로 문화유적과 관광지가 숨어 있는 독특한 구조였다.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모습, 이는 좁은 땅 위에서 고층 개발을 허용하면서 문화재를 살려낸 선택의 결과였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도시의 정체성을 ..

인생에세이 2026.03.30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서게 한 이름, 아내

나의 오랜 친구가 있다. 부부끼리 일년에 두세 번 여행도 하고 함께 만남을 가지는 사이이다. 아내들끼리도 아주 사이 좋게 잘 지낸다.그날 자연휴양림의 저녁 공기는 유난히 차분했고, 식탁 위의 음식보다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깊게 마음을 데우고 있었다. 오래된 관계에서만 나올 수 있는 편안함 속에서, 질문 하나가 과거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어제 한 달 전 예약해 놓은 자연휴양림에서 저녁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로 이어졌고, 나는 친구의 형 소식을 물어보았다. 형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아주 강렬하다. 내가 고3일 때 형은 대학 ROTC로 재학 중이었고, 졸업 후 군에 학사장교로 임관되었다고 들었다.그 시절의 형은 단순히 잘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말과 태도에..

인생에세이 2026.03.29

처음 잃어버린 것의 무게

검정고무신과 운동화나의 어릴 적 신발은 검정고무신으로부터 시작됐다. 달리다 보면 벗겨지기 일쑤였고, 보온과 충격흡수도 부족했으며 고무 냄새까지 나는 불편한 신발이었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다. 하얀 고무신은 비싸 쉽게 신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흑백TV 속 운동화는 유난히 빛나 보였다.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신어야 했던 시절, 그 신발은 내 현실의 크기였다. 그 한 켤레는 생활이 아니라 삶의 조건을 말해주고 있었다.몇 날 며칠을 졸라 손에 넣은 운동화를 신던 날, 나는 정말 날아갈 듯했다. 가벼움과 디자인은 고무신과 비교할 수 없었고, 괜히 친구들 앞을 맴돌며 자랑하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러나 세탁 후 연탄불 옆에 두었던 운동화는 잠깐 사이 그을리고 쪼그라들었다. 나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고, ..

인생에세이 2026.03.28

운전대는 누구 손에 있는가.

오늘 아내와 함께 운동하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새벽 공기는 차갑지만 머리는 맑았다.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그 공기만큼 또렷하게 느껴졌다.약간의 거리가 있어 차를 운전해 자동차 전용도로에 올랐는데, 도로는 한산했다.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과 드문 차량들이 오히려 이 여유를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처음엔 휴일 아침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보니 평일 금요일 오전 6시 40분이었다.머릿속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어긋나는 순간, 나는 이미 예전의 삶에서 벗어나 있다는 걸 깨닫는다.출근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내 생활 리듬을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고 과거의 습관대로 판단한 것이다.몸은 새로운 리듬에 적응했지만, 생각은 아직 완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다.달리는 도로 위 차들을..

인생에세이 2026.03.27

이혼에 대한 시대적 변화

어릴 적 아버지 세대에는 ‘과부’라고 불리는 아줌마들이 종종 있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깊이 알지 못했다. 그저 남편이 없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인식뿐이었다. 이혼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이혼’이라는 말이 일상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과거의 기억과 겹쳐 보이며 그 의미가 점점 선명해졌다.그 시절 ‘과부’라는 단어는 개인의 삶을 설명하기엔 너무 단순하고 무거운 낙인이었다. 지금은 ‘이혼’이라는 말로 바뀌었지만, 이름만 달라졌을 뿐 그 안의 삶은 여전히 각자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다만 달라진 점은,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나 역시 결혼 이후 세 번의 창업 실패를 겪으며 삶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경제적 압박은 자연스럽게 부부 갈등으로 이어졌고, 그 끝에는 ..

인생에세이 2026.03.26

토사구팽의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지켰는가

2010년 11월, 나는 조선소 신규 아이템 영업 및 설계부장으로 입사했다.그러나 4개월 만에 실적을 이유로 질책을 받았고, 그 다음날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선택이 아니라 밀려난 결정이었다. 그리고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다른 회사로 향했다.짧은 시간 안에 반복된 이동은 실패가 아니라, 버티지 못한 환경의 결과였다.처음의 선택은 단순한 이직이 아니라, 존중받지 못한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최소한의 결단이었다. 그때 이미 나만의 기준은 만들어지고 있었다.3개월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사장은 과거는 묻지 말고 다시 함께 일하자고 했다. 당시 느꼈던 섭섭함을 꺼내고 싶었지만, 묻지 말아 달라는 말에 접어두고 다시 입사했다. 그 선택이 이후의 시간을 결정지었다.그때 이미 관계의 균열은 시작된 상태였고, 나는 그..

인생에세이 2026.03.26

② 돌아온 것은 인맥이 아니었다

복귀 후 나는 설계와 영업을 동시에 맡게 되었다. 1인 2역의 시작이었다. 역할이 늘어난 만큼 책임의 무게도 분명히 달라졌다.회사의 주력 제품은 특수커버였다.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핵심 아이템이었고, 국내에서는 유일한 기술이었다. 경쟁은 해외 업체 한 곳과의 싸움이었다.입찰은 치열했고, 단가는 계속 압박받았다. 작은 차이가 곧 수익을 결정하는 구조였다.그러던 중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주력 아이템을 담당하는 조선소 구매부장이, 과거 조선소 설계실에 있던 선배였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단가 계약으로 가자. 대신 가격만 조금 낮춰달라.”이건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다.경쟁 입찰이 아닌 사실상의 단독 공급 구조였다. 선택이 아니라 판 자체가 바뀌는 순간이었다.회사의 ..

인생에세이 202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