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 59

20년 만에 인정한 한 그릇의 차이

맛집 떡볶이 집이 왜 맛집인지 나는 20년 만에 알았다. 20년 전부터 떡볶이가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 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웃었다. 떡볶이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어. 다 거기서 거기지. 그렇게 단정하며 지나쳤다. 서울 신당동 떡볶이도 먹어보았고 여러 가게도 다녀봤지만 결국 비슷비슷했다. 그래서 그 집도 같을 거라 확신했고, 굳이 줄 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어제 딸아이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그 집에 들렀다. 마침 줄이 없었다. 포장해 와 한입 먹는 순간 멈췄다.“어? 다르네.”진한 빨강의 양념은 윤기가 돌았고, 매운맛 뒤에 단맛이 길게 남았다. 자극적인데 거칠지 않았다. 익숙한 음식인데 낯설었다. 그 짧은 순간, 20년짜리 편견이 무너졌다. 왜 사람들이 줄을 서는지 이해됐다. 적어도 내 ..

인생에세이 2026.02.27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있는가

차를 타고 가다보면 길가 주위에 버린 쓰레기봉지들을 자주 보게 된다. 저것을 버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마음으로 버리는 것일까 하고 궁금해졌다. 그 사람도 알고는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하게 된다. 이해는 힘들다. 하지만 저렇게 쓰레기를 버리는 소위 무양심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나친다.다들 배워서 안다. 쓰레기를 길가에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을 넘어 최소한의 기본이라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아무도 안 보니 양심도 같이 버려버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차를 타고 가다가 버린 쓰레기였으니, 만약 옆에 아이들이라도 타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기준으로 “아빠 왜 쓰레기 버려?” 이렇게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아주 궁금해지기도 한다.그 한마디는 ..

인생에세이 2026.02.26

종이를 넘기던 손, 모니터를 두드리는 손

나는 어릴 적 만화를 정말 좋아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만화방에 살다시피 했고, 어떤 날은 학교를 땡땡이칠 정도로 빠져 있었다. 만화를 보며 꿈을 키웠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종이를 넘기는 촉감과 잉크 냄새, 다음 장면을 기다리는 설렘은 그 어떤 놀이보다도 컸다. 나는 읽는 아이이면서 동시에 따라 그리는 아이였다.TV 보급이 많지 않던 시절, 흑백TV 화면 속 만화영화는 또 다른 세계였다. 종이 위에 머물던 그림이 움직이는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그린다’는 행위가 세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배웠다.고등학교 진학 때 기계설계과를 선택했고, 취업 후 조선소 설계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종이에 그리던 선은 이제 철과..

인생에세이 2026.02.25

아들이라는 이름, 우리가 놓지 못한 것

한국에서 아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얼마 전, 가장 가까운 친구와 통화를 했다. 두세 달에 한 번은 꼭 안부를 나누는 사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관계는 오히려 단단해졌다. 그날도 가족 이야기와 건강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결국은 삶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큰딸은 결혼해 분가했고, 둘째 딸도 결혼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고향을 떠나 오랜 시간 고생하며 일군 사업이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말끝에는 안도감이 묻어 있었지만, 곧 이어진 문장에는 묵직한 고민이 실려 있었다.나이가 들면 이 사업을 물려주어야 하는데, 아들이 없다는 것이다. 딸뿐이라 고민이라는 말이었다.나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왜 딸이 이어받으면 안 되지?”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작은 숨이 새어 나왔다. 친구는 자신의..

인생에세이 2026.02.25

술은 나를 드러낸다

술에 대한 기억은 아주 오래전에서 시작된다.어릴 적, 아버지는 주전자에 막걸리 한 되를 받아 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 주전자를 들고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막걸리 술도가로 심부름을 다녔다. 돌아오는 길, 호기심에 주전자 뚜껑에 살짝 따라 맛을 보곤 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그날의 막걸리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술이라는 존재가 내 삶에 처음 스며든 순간은 또렷하다.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주전자는 가벼웠지만, 그 안에 담긴 어른들의 세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는 그 무게를 모른 채, 이미 그 문턱을 넘고 있었다.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술은 취향이 아니라 기술이 되었다.술을 잘 마시면 사람 좋다는 말을 들었고, 술을 못 마시면 조직에 섞이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던 시대였다. 설계부의 회식은 형식상 모임..

인생에세이 2026.02.25

가능성의 전화

조선소는 나의 첫 직장이었다.그곳에서 나는 기술보다 먼저 사람을 배웠다.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한 조직 안에서 부딪히고 맞추며사회적 거리와 선을 몸으로 익혔다.그 시간은 분명 나를 만들었다.그러나 이 글은 조선소 이야기가 아니다.15년 만에 걸었던 한 통의 전화,그 차가운 온도의 이유에 대한 기록이다.7년 근무 후 창원으로 전보를 갔다.결혼을 했고, 퇴사했고, 창업에 실패했고,다시 중소기업에 몸담았다.나는 늘 다음 단계를 향해 움직였다.그 사이 관계는 조용히 멀어졌다.의도가 아니라 시간의 결과였다.설계부장에 더해 영업까지 맡게 되었고조선소 전산 시스템에서 오래된 번호들을 다시 보았다.반가움이 앞섰다.나는 그것이 순수라고 믿었다.하지만 15년은안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시간은 아니었다.전화기 너머에는 ..

인생에세이 2026.02.24

연필에서 도면으로, 그리고 문장으로

나의 어릴 적 취미생활 중 하나는 만화 그리기였다. 딱히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만화가 주는 상상의 세계가 너무 좋았다. 종이 위에 연필이 닿는 순간, 현실은 사라지고 또 다른 세계가 열렸다. 그 세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었고, 무엇이든 가능했다.어떨 때는 학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만화방에 가서 돈을 내고 만화를 보기도 했다. 만화방 특유의 잉크 냄새와 종이를 넘기는 소리는 어린 나에게 하나의 우주였다. 그리고 싶은 장면이 나오면 한 장면을 몰래 찢어 책가방에 숨겨 나오기도 했다. 집에서, 학교에서, 그 장면을 따라 그리며 수없이 연습했다. 들킬까 조마조마했지만 그 한 장면은 교과서보다 더 소중한 나만의 교본이었다.내가 주로 그리던 것은 전투 장면이었다. 전쟁 드라마와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

인생에세이 2026.02.24

칼같이 끊고, 오래도록 품다

[글쓴이의 한마디]인사노무 전문가로 살며 수만 장의 영수증과 수만 명의 관계를 지켜보았습니다. 돈으로 남는 기록과 마음으로 남는 기록을 동시에 들여다보며 살아왔습니다. 숫자는 틀림이 없지만, 사람은 언제나 여백을 남깁니다.돈의 채무는 칼같이 끊어내야 하지만, 마음으로 남은 은혜는 오래도록 품고 가고 싶은 한 남자의 다소 완고한 생각을 담았습니다.나는 평생 ‘채무’에 대해 유난히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쓰지 말자.” 단순하지만 단단한 원칙이 내 경제생활의 기둥이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결국 미래의 나에게 당겨 쓰는 약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내일의 나를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는 다짐. 어쩌면 그것은 돈에 대한 태도라기보다 삶을 대하는 방식이었다.대기업 생..

인생에세이 2026.02.24

소풍은 그렇게 끝이 났다.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모임 소식을 듣고 나갔다. 무려 30년에서 40년 만의 만남이었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 같은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녔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다섯 군데 정도로 흩어졌다. 고등학교에 가면서는 더 멀어졌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집을 떠나 거제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명절 외에는 집에 거의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인연도 멀어졌다.그러다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동창회 모임 이야기를 들었다. 오라는 말에 큰 기대 없이 나갔다. 최소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친구는 몇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름을 확인하고,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는 순간 어색함은 서서히 풀렸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는 중년이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

인생에세이 2026.02.24

통찰의 글 ― 왜 나는 그 자리를 떠났는가

나는 부산 괴정의 골목에서 자랐다.부족했지만 놀이는 풍부했다.공 하나면 운동장이 되었고, 규칙은 우리가 만들었다.결핍은 상상력을 키웠고, 공동체는 생존 방식이었다.그 골목의 냄새와 흙먼지의 감촉은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가난은 불편했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재료였다.나는 그곳에서 버티는 법을 먼저 배웠다.그 시절 우리는 가까웠다.집집마다 음식이 오갔고, 싸움도 있었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어울렸다.관계는 단순했고 계산이 없었다.그 단순함은 지금 돌아보면 하나의 질서였다.서로의 형편을 알았기에 설명이 필요 없었다.말보다 눈빛이 먼저 통하던 시간이었다.그러나 나에게 그 시간은 순수함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가난과 가정의 상처가 함께 있었다.그래서 나는 과거를 미화하지 않는다.상처는 조용히 남아 사..

인생에세이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