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9 11

우리는 언제부터 스마트폰과 동거를 시작했을까

스마트폰이 내 손안에 들어온 지도 벌써 15년이 흘렀다.처음에는 그저 휴대전화 안에 작은 컴퓨터를 얹어 놓은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스마트폰은 컴퓨터를 넘어, 우리의 기억과 판단, 감정까지 대신해 주는 존재가 되었다.손에서 떨어질 틈 없이 하루 24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나는 가끔 농담처럼 말한다.“나는 지금 스마트폰이랑 동거 중이다.”이제 스마트폰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은행 업무도, 길 찾기도, 사람과의 연락도 모두 이 작은 화면 안에서 해결된다.하지만 편리함이 극에 달할수록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만약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얻는 대신, 무엇을 잃어버렸을까.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생각의 부재’다.편리함 속에서 우리의 머..

인생에세이 2026.02.09

직설은 진실이었지만 신뢰는 아니었다

꼬박 30년이 걸렸다.그렇다면 앞으로의 변화도아마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이제는 안다.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에도사실은 오래전부터아주 조금씩, 거의 보이지 않게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나는 직설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애매하게 돌려 말하지 않았고,문제가 생기면내 생각을 여지없이 쏟아냈다.남의 말은 잘 듣지 않았다.정확히 말하면,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나는 그게 옳은 말이라고 믿었다.솔직함은 미덕이고,직설은 용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과는 달랐다.주위에서는나를 신뢰하지 않았다.사람들은 나를저돌적이고, 불같고,자기 말만 하는 사람으로인식해버렸다.그제야 알았다.말이 틀려서가 아니라말을 다루는 태도가문제였다는 걸.예전의 나는정답을 말하면관계는 따라올 거..

인생에세이 2026.02.09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다

다만 함께 변해갈 뿐이다그래서 나는,‘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에자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나이가 들면서“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점점 더 자주 듣게 되었고,어느 순간부터는 나 역시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꺼내고 있다.왜일까.아마 사람을 교육하고, 잔소리하고,조언해서 본질을 바꾸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그 현실을 가장 간단하게 압축한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나는 결혼 전,아주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진전형적인 부산 남자였다.남자의 권위,가장의 권위는 당연한 것이라 믿었고,지금 돌아보면조선시대에나 어울릴 법한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의심 없이 품고 살았다.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30년이 지난 지금,나는 바뀌었을까.아니면 고쳐졌을까.답은 분명하다.바뀌었다.하지만 고쳐지지는 않았다.‘..

인생에세이 2026.02.09

말은 쉽게, 변화는 느리게

사람을 고친다는 착각에 대하여사람은 왜 이렇게 쉽게 고쳐지지 않는 걸까.나이가 들수록 이 질문을 더 자주 곱씹게 된다.사람은 오랜 시간 각자의 가정환경과 성장 배경,그리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하루아침에 형성된 존재가 아니다.지금의 우리는, 말하자면오랜 시간 숙성된 삶의 결과물에 가깝다.그렇게 만들어진 사람들이사회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안고 부딪힌다.호흡하며 살아간다.쉽지 않다.그럼에도 우리는 그대로 살아간다.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구조 안에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가끔은‘더불어 산다’는 말의 의미를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각자의 기준과 신념이 이미 세팅된 성인이사회 규범 속에서다른 사람과 가치관의 충돌을 겪는 것은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인생에세이 2026.02.09

단돈 2만 원의 장바구니에서 배운 것

부제: 퇴직 후, 처음으로 다시 선 장날에서어제는 참으로 오랜만에 돌아본 장날이었다.언제부터였을까, 장날의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던 설렘이 대형마트의 편리함에 밀려난 것이. 그렇게 발길이 끊겼던 시장을 다시 찾은 건, 순전히 필요 때문이었다.이제는 수입이 없다는 사실, 가진 돈으로 버텨야 한다는 현실이 주는 압박을 애써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다는 건 결국 먹는 일이다. 최소한의 먹거리는 챙겨야 했고, 그 이유로 우리는 아내의 제안에 따라 오랜만에 시장 나들이에 나섰다.장에 도착해 천천히 발을 떼자, 잊고 살았던 장터의 활기가 몸으로 먼저 전해졌다. 소리와 냄새, 사람들의 표정까지.마침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 냉장고에서 바닥을 드러내던 참이었는데, 장터 입구에서 그 녀석을 마주쳤다. 계절 ..

인생에세이 2026.02.09

우물밖을 처음 보던 날

아주 오래전,해외여행은 꿈같은 이야기였다.바다 건너 외국을 다녀온 사람이라곤외항선을 타는 뱃사람,베트남 참전 용사,중동 건설 현장으로 떠난 근로자들뿐이었다.‘여행’이 아니라‘일’을 위해 떠난 사람들이었지만,그 사실 하나만으로도동네의 화제가 되곤 했다.해외는 그렇게멀고도 낯선 세계였다.내 첫 해외 경험은자동차회사 인사관리자로 근무하던 시절,일본 출장으로 찾아왔다.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준비는 과할 만큼 필요했다.처음으로 여권을 만들고,여행자 수표를 환전하고,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었다.공항 이용법부터일본 현지 버스 타는 법,신칸센을 갈아타고하마마쓰까지 가는 방법까지먼저 다녀온 직원에게하나하나 배워야 했다.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그때의 나는완벽한 ‘촌놈’이었다.국내선 비행기조차 타본 적 없는 내가..

인생에세이 2026.02.09

돈보다 중요한 건 선택권이었다.

젊었을 때는돈이 전부인 줄 알았다.월급이 많으면 웬만한 건 참을 수 있었고,조금 무리해도“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그땐 몰랐다.참는다는 게한 번에 나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조금씩, 아주 조용히나를 깎아먹고 있다는 걸.돈이 있어도 불행한 사람은 많다.이유는 복잡하지 않다.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싫어도 그만둘 수 없고,맞지 않아도 버텨야 하며,이미 틀어진 관계조차정리하지 못한다.돈은 있는데삶은 묶여 있는 상태.이건 여유가 아니라형편 좋은 속박이다.이 나이가 되니비로소 알겠다.여유란원하는 걸 다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원하지 않는 걸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라는 걸.불편한 자리를 거절할 수 있고,무리한 요구에조용히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으며,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게돈이 주는가장..

인생에세이 2026.02.09

주는 사람으로 살아 본적이 있는가

아주 어릴 적, 나는 교회를 다녔다.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교회는 그저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친구들이 있었고, 예배가 끝나면 늘 간식이 나왔다.그 시절의 교회는 믿음의 장소라기보다,아무 이유 없이 환대받던 기억의 공간에 가까웠다.그곳에서 자주 들었던 문장 하나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다.”어릴 때의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어른들이 늘 하던 말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그런데 요즘, 그 문장이 이상할 만큼 마음에 걸린다.왜 지금에서야 이 말이 나를 붙잡는 걸까.이 말을 사회생활로 옮겨 놓는 순간,문장은 갑자기 감상적인 문구가 아니라놀라울 만큼 냉정한 기준이 된다.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인정받지 못했다고, 대우받지 못했다고,기회를 받지 못했다고..

인생에세이 2026.02.09

덕분이라고 말하기까지

나는 오랫동안 “때문에”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써왔다.누구 때문에, 상황 때문에, 날씨 때문에.그 말들은 늘 내 바깥을 가리키고 있었다.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설명이 많았다.설명은 곧 변명이었고,변명은 나를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왜 나는 늘 이유를 밖에서만 찾고 있을까.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이렇게 피하고 있을까.그때부터 말버릇을 조금씩 고치기 시작했다.“때문에” 대신 “덕분에”를 쓰기로 한 것이다.대단한 결심은 아니었다.다만 책임의 방향을 바꿔보고 싶었다.“당신 때문에 힘들었다” 대신“당신 덕분에 편하게 되었다”고 말해보니관계가 좋아졌다기보다는내 마음이 덜 날카로워졌다.물론 반세기 넘게 써온 말을쉽게 바꿀 수는 없다.지금도 무심코 “때문에..

인생에세이 2026.02.09

직장은 사랑이 아니다

작년, 정년퇴직이 되는 예순을 넘겼다.국민연금이 나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3년.그동안은 사람 스트레스가 없는 일을 하며 조용히 시간을 건너갈 생각이었다.나름대로 계획도 세웠고,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그런데 3일 전, 사장이 권고사직 이야기를 꺼냈다.완전히 예상 밖의 일은 아니었다.이미 우리는 여러 번 부딪혔고, 지난주에는 크게 다툰 뒤‘이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내가 먼저 말을 꺼낼 수도 있었다.하지만 실업급여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결국 올해 말까지 마무리하는 것으로 구두 합의를 했고,12월 31일 자로 권고사직 형태의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정리되었다.돌이켜보면 37년이 넘는 직장생활 동안이런 운명을 세 번째 ..

인생에세이 202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