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4 4

말죽거리의 군화 소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있었다.그런데 화면보다 먼저 과거가 밀려왔다.교실 냄새, 복도 소리, 그리고 군화 발소리.지워진 줄 알았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그리고 나는 알았다.이건 영화가 아니라 내 기억이었다. 말죽거리잔혹사처럼.고고장. 교련선생. 불법잡지. 소지품검사.당구장, 음악다방. 내 기억 속 가장 선명한 단어들이다.그 단어들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었다.넘지 말아야 할 선의 목록이었고, 동시에 우리가 매일 바라보던 세계였다.학교 안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들.가서는 안 되고, 해서는 안 되는 것들.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들은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세계였다.나는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문제아도 아니었다.그 중간 어딘가에 서 있었다.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당구장으로 갔다.초록색 천 위로 굴러가던 공 소리.분필 가루가..

카테고리 없음 2026.06.04

김치의 맛이 변한 게 아니었다, 사람의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어떤 음식은 맛으로 기억된다.하지만 어떤 음식은 그 시절 사람들의 얼굴까지 함께 떠오르게 만든다.나에게 김치는 그런 음식이다.나는 정말 김치 매니아라 불러도 좋을 만큼 김치를 사랑한다. 특히 신김치와 묵은김치를 좋아한다.어릴 적에는 정구지라 부르던 부추김치를 많이 먹었다. 그 시절 우리 집 김치는 대부분 갓 담근 새김치가 아니라 푹 익은 신김치였다.반찬이라고 해봐야 신김치에 된장찌개, 콩조림 정도가 전부였다. 가끔 시래기국이 올라오면 그것도 별미였다.겨울 저녁, 누렇게 변한 전구 아래에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김치 한 조각 올려 밥 한 숟갈을 밀어 넣던 그 시절에는 부족한 줄도 모르고 살았다.새김치를 얻어오면 일부러 삭혀서 먹을 정도로 나는 신김치에 진심이었다.결혼 후 신..

카테고리 없음 2026.06.04

구충제를 먹어야겠다는 말에 사라진 시대가 떠올랐다

어떤 단어는 약보다 먼저 시간을 꺼내 놓는다.그날도 평범한 외출이었다.하지만 아내가 꺼낸 한마디는 내 기억 속 먼 시간을 깨워버렸다."구충제를 먹어야겠어."오늘 아내와 외출을 하면서 걷다가 갑자기 그런 말을 들었다.나는 의아한 마음에 "왜?"라고 물었다.아내는 아침에 일하러 가는 집의 아이가 구충제를 먹고 있고, 그 아이의 엄마가 간호사라 관련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인데도 먹이는 것을 보니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에 어린이집을 운영할 때는 꾸준히 구충제를 먹었다고 말했다.나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지금 시대에 구충제라니. 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구충제라는 말을 듣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서도 구충제를 먹으라고 약을 나누어 주기..

카테고리 없음 2026.06.04

38년 인연의 비밀 — 사람은 왜 어떤 곁에만 머무는가

어떤 관계는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다.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지는 얼굴이 있다.38년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연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한 흔적이다.우연으로 시작된 만남이 어떻게 한 세월을 견디는 관계로 남을 수 있었을까.서을동생과는 무려 38년 이상의 만남과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인연이라 아니할 수 없다.1988년 결혼 전 혼자 여행 중 우연히 스쳐 지나간 짧은 만남이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다.결혼 이후에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부부끼리의 만남으로 이어졌다.남자들끼리는 쉽게 통하지만, 여자들끼리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그런데 이 관계는 예외였다. 아내들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여행을 같이 하고, 캠핑을 같이 하고, 아이들까지 서로 연락하며 자라왔다.동생네 부부는..

카테고리 없음 2026.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