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세이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서게 한 이름, 아내

초심행님 2026. 3. 29. 21:40

나의 오랜 친구가 있다. 부부끼리 일년에 두세 번 여행도 하고 함께 만남을 가지는 사이이다. 아내들끼리도 아주 사이 좋게 잘 지낸다.

그날 자연휴양림의 저녁 공기는 유난히 차분했고, 식탁 위의 음식보다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깊게 마음을 데우고 있었다. 오래된 관계에서만 나올 수 있는 편안함 속에서, 질문 하나가 과거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어제 한 달 전 예약해 놓은 자연휴양림에서 저녁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로 이어졌고, 나는 친구의 형 소식을 물어보았다. 형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아주 강렬하다. 내가 고3일 때 형은 대학 ROTC로 재학 중이었고, 졸업 후 군에 학사장교로 임관되었다고 들었다.

그 시절의 형은 단순히 잘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말과 태도에는 여유와 확신이 배어 있었고, 그 차이는 더 크게 다가왔다.

얼마 후 나도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몇 년 뒤 명절에 친구 집에서 형을 만나 술을 함께했다. 형은 대위로 전역 후 유망한 중견대기업에서 경리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의 말과 태도, 자신감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를 동경하게 되었고, 형이 말하는 서울 본사의 일은 우리가 상상하던 이상으로 경이로운 세계였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단순한 자랑이 아니라,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세계를 엿보게 하는 창이었다. 그래서 더 부러웠고, 더 믿고 싶었다.

일상에서는 접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기업 M&A 같은 이야기부터, 사람들과의 만남과 접대 문화까지 모든 것이 상상을 뛰어넘었다. 하루 저녁에 강남 룸사롱에서 500만 원어치 술을 접대했다는 말은, 당시 월급 70만 원이던 나에게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형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감 있는 말과 행동, 모든 것이 달랐다.

그러나 한동안 형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친구를 통해 들은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회사가 IMF 때 부도가 나면서 회생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파산신청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경리부장이었던 형은 회사 자금 수억 원을 맡고 있었지만, 그것을 모두 회장에게 넘겨주고 회사를 떠났다고 했다.

그 소식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다. 우리가 믿고 있던 ‘안정된 성공’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드는 일이었다. 한 사람의 추락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몇 년 전의 형의 모습이 떠올라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성공한 엘리트의 상징 같던 사람이었기에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세상사는 참으로 알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그로부터 약 2년 뒤, 형이 다시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가장 힘들다고 알려진 조선소 외주업체에서였다. 나는 조선소에서 기술사무직으로 7년을 근무했기에 그 일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조선소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버티는 곳이다. 쇳소리와 먼지, 위험과 피로가 일상이 되는 공간에서 하루를 견딘다는 것은, 과거의 자신을 매일 부수고 다시 세우는 일과 같다.

현장은 위험하고 작업환경도 열악하다. 탄광 다음으로 힘든 직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형은 화이트칼라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다. 기술이 있을 리 없었다.

한때 정점에 있던 사람이 내려와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과 존재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다. 그 무게는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형은 현장에서 일을 배우며 버텨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인내와 자기반성, 고통을 견디며 20년 가까운 시간을 버텨왔다.

20년은 단순한 버팀이 아니다. 그 시간은 결국 그를 새로운 전문가로 만들었고, 삶의 방향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조선기술전문직이라 불러도 될 만큼의 위치에 올라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을 버티게 한 가장 큰 힘은 아내였다고 했다.

결국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능력도, 과거도 아니다. 끝까지 곁에 남아 있는 한 사람이다. 무너진 이후에도 떠나지 않는 존재, 그것이 삶의 기반이다.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형을 지켜낸 것은 결국 아내의 희생이었다.

나 역시 대기업을 나와 몇 번의 창업 실패를 경험했고,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키우며 나를 받아준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나 또한 같은 길을 지나왔다.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형과 나,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여기까지 버틴 이유는 같다. 아내 덕분이다. 만약 아내가 내 곁에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지 쉽게 상상할 수 없다.

이제는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로.

이제 가정을 지키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남편들이 보답해야 할 차례다. 비싼 것이 아니라 진심이다. “사랑한다”, “고생 많았다”는 말 한마디면 된다.

당신의 아내는 당신을 위해 희생하고, 사랑으로 가정을 지키며 아이들을 키워왔다.

당신은 그 아내에게 어떤 말을 건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