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만 5천 원짜리 가족사진이 가르쳐준 소비의 기준
“동영상까지 포함하면 400만 원입니다. 동영상을 빼면 250만 원입니다.”
직원의 말이 끝나자 스튜디오 안의 공기가 순간 멈췄다.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4만 5천 원짜리 가족사진을 찍으러 온 것뿐이었다.
재작년 3월 초, 딸이 결혼했다.
결혼 전날 딸은 김해에 있는 우리 집으로 내려왔고, 마침 군에 있던 아들도 여동생 결혼식 휴가를 받아 집에 왔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딸이 말했다.
“우리 가족사진 다 같이 찍어요. 이때 아니면 언제 가족사진 찍을 수 있을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딸의 말이 맞았다.
해군 장기부사관으로 근무하던 아들은 군함을 타고 바다에 나가 복무하고 있었다. 명절에도 일반 직장인처럼 자유롭게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네 식구가 다시 함께 사진을 찍을 날을 잡기 어려울 것 같았다.
딸은 미리 김해의 가족사진 스튜디오를 알아보고 예약까지 해두었다.
4만 5천 원이었다.
오후가 되어 우리는 설렘을 안고 스튜디오로 갔다.
“아버님은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아드님은 이 신발로 신으시면 됩니다.”
옷과 신발을 바꾸고 촬영이 시작됐다.
“조금만 웃어주세요.”
“이쪽을 봐주세요.”
“이번에는 이 자세로 해볼게요.”
옷과 신발을 바꾸고 배경을 달리하며 촬영했다. 두 시간은 족히 걸렸다.
촬영이 끝나자 사진을 고르는 시간이 시작됐다.
모니터에 수백 장의 사진이 나타났다.
“나는 이 사진이 좋은데.”
“어, 나도 좋아.”
“이것보다 이 사진이 더 좋은 것 같은데?”
가족끼리 사진을 고르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저 좋은 가족사진을 고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을 다 고른 뒤 직원의 말이 나왔다.
“동영상까지 포함하면 400만 원입니다. 동영상을 빼면 250만 원입니다.”
4만 5천 원으로 시작한 가족사진이 수백만 원의 선택지가 되어 있었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OO야, 100만 원 선까지는 계산하는 게 어떻겠냐. 이렇게 오랫동안 촬영했고, 직원들도 고생했고, 스튜디오 사용료도 있으니 그 정도는 합리적인 소비 같구나.”
딸이 말했다.
“아빠, 이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딸은 처음 예약했던 조건을 그대로 선택했다.
4만 5천 원.
약속된 규격의 작은 사진과 액자만 받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스튜디오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우리 가족도 조금만 달랐더라면 수백만 원을 결제했을지 모른다.
이미 두 시간 동안 촬영했고, 옷도 여러 번 갈아입었다. 수백 장의 사진을 보았고 그중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이 사진은 정말 좋은데.’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텐데.’
처음에는 4만 5천 원짜리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다.
하지만 촬영이 끝날 무렵에는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다시 오지 않을 가족의 한순간을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며칠 전 한 기사를 읽다가 손이 멈췄다.
5인 가족 기준 4만 9천 원이라는 광고를 보고 예약금을 낸 가족의 이야기였다.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하고, 반나절 동안 가족사진을 찍었다.
문제는 사진을 고르는 과정에서 생겼다.
스튜디오 측은 원본 파일을 별도로 판매하지 않으며, 원본을 받으려면 600만 원 이상을 결제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온 가족이 반나절을 투자한 뒤였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는 결국 메이크업과 앨범·액자를 포함해 715만 원을 결제했다.
집에 돌아와 금액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 환불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런데 한국소비자원 신고와 법적 대응을 이야기하자 이번에는 원본만 400만 원, 전체 구성을 500만 원에 해주겠다는 제안이 나왔다.
715만 원에서 400만 원, 다시 500만 원.
가격이 수백만 원 단위로 오갔다.
그 기사를 읽으며 나는 우리 가족의 경험을 다시 떠올렸다.
우리 가족에게는 다행히 딸이 처음부터 기준을 지켰다.
“아빠, 이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돌이켜보면 그 말은 단순히 돈을 아끼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처음 내가 선택한 기준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소비자에게도 확인할 책임은 있다.
처음 광고 가격에 무엇이 포함되는지, 원본 파일은 별도인지, 추가 비용은 얼마인지 계약 전에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자가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다음 높은 가격을 제시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가족사진은 일반적인 상품과 다르다.
가족이 어렵게 시간을 맞췄고, 오랜만에 함께 웃었으며, 그 사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담긴다.
그 마음 때문에 사람은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정말 원해서 산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사고 싶도록 만들어진 것인가.
그날 나는 딸에게 소비에 관한 한 가지를 배웠다.
좋은 상품을 사는 것과
사고 싶도록 만들어진 상품을 사는 것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날 찍은 가족사진을 생각하면 또 다른 마음이 든다.
그 사진은 결혼을 앞둔 딸과 다시 군함을 타고 바다로 나갈 아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던 시간의 기록이다.
그때 아니면 언제 다시 네 식구가 그렇게 오래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그 사진은 지금도 소중하다.
하지만 소중한 추억이라고 해서 그 가격까지 누군가가 정해줄 필요는 없다.
추억은 소중하지만, 추억의 가격까지 누군가가 정해줄 필요는 없다.
어쩌면 현명한 소비란 돈을 적게 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 선택에 끝까지 책임지는 것.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인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선택지를 따라간 것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
우리 가족은 그날 4만 5천 원을 내고 스튜디오를 나왔다.
작은 액자 하나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켜낸 것은 4만 5천 원이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사진 속 네 사람은 지금도 환하게 웃고 있다.
그날은 몰랐다.
그 사진 한 장이 훗날 나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줄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