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변하지 않았다면, 우리 부부도 끝났을지 모른다
며칠 전 저녁이었다.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 채널을 돌리다가 이호선 상담소에서 손이 멈췄다.
우리 부부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한쪽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와, 너무 심하네. 저렇게 어떻게 살아.’
그런데 이어서 상대편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또 기운다.
‘그럴 수도 있겠네.’
아내와 나는 그렇게 한쪽 편을 들었다가, 또 반대쪽으로 돌아섰다가 하면서 화면을 봤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부부가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하며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상담자의 중재로 조금씩 마음을 열고, 결국 남편이 아내를 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끝났다.
그 장면을 보는데 문득 소름이 돋았다.
화면 속 남편이 아니라, 30년 전의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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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마음속에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나는 무뚝뚝하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아버지 가게에 지인들이 놀러와 술자리가 벌어지면 어머니는 말없이 안주를 내오셨다.
술이 한 차례 돌면 누군가 이렇게 말하곤 했다.
“형수, 지금 만든 김치찌개 정말 맛있어요.”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뭘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정말 맛있어서 한 말이었는지, 술까지 마시는 게 미안해서 건넨 빈말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어린 내 입맛에도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좋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한번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당신, 오늘 만든 국은 맛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아주 낯선 말이었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뒤로는 다시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
그 한마디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집을 떠나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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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국은 따라 할 수 없었다
결혼 후 부산 부모님 집에 가면 음식 준비는 늘 어머니 몫이었다.
아내는 옆에서 거들었지만 아직 어머니 손맛을 따라갈 수준은 아니었다.
어느 날 점심상에 하얀 국물의 소고기무국이 올라왔다.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구수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동안 알던 소고기국은 대부분 빨간 국물이었는데, 이건 전혀 다른 맛의 세계였다.
아내도 정말 맛있다고 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부탁했다.
“엄마가 만든 하얀 국물 소고기무국 한번 만들어줘.”
“그래, 알았어.”
몇십 분 뒤 그럴싸한 국이 식탁에 올라왔다.
기대하며 한 숟가락 떠먹었는데, 맛이 전혀 달랐다.
“이거 맛이 전혀 아닌데? 왜 이래?”
“나도 모르겠어.”
아내는 어머니가 국 끓이는 걸 곁눈질로 대충 보고 따라 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국 맛에 대해서만 느끼는 대로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정말 몰랐던 건 국 맛이 아니었다.
나는 아내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서툰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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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를 거절하던 남자
신혼 초 어느 아침,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아내가 따라 나와 볼을 내밀었다.
뽀뽀를 해달라는 시늉이었다.
‘왜? 이게 뭐지? 뭐 하는 거지?’
나는 당황했다.
“뭐 하는 거야? 이런 거 하지 마.”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고 출근했다.
하루 이틀 지나자 아내가 토라진 말투로 물었다.
“당신, 나 사랑하지 않는 거 아니야? 뽀뽀해 달라고 해도 안 해주고, 너무해.”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럼 뭐야?”
딱히 설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뽀뽀를 꼭 해야 사랑하는 거야? 마음만 확인하면 안 돼?”
아내의 서운함은 잠시 가라앉았지만, 다음 날이면 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아내 볼에 입을 맞추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게 처음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쑥스럽고 어색했다.
그런데 조금씩 흉내 내다 보니 어느 순간 쑥스러움이 사라졌다.
부자연스럽던 행동이 자연스러워졌고, 나중에는 아내가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볼에 입을 맞추는 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3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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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마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TV 속 부부를 보며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면.
아내가 사랑을 표현해달라고 해도 계속 무뚝뚝하게 굴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 여기며 살았다면.
우리 부부도 화면 속 저 부부들처럼 어느 순간 감정이 폭발했을지 모른다.
그 순간, 아내가 예전에 던졌던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당신, 나 사랑하지 않는 거 아니야?”
그때는 변명으로 넘겼던 그 질문에, 다시 답할 기회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하지 않아서 변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사랑했기 때문에 변할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마음속에 사랑을 담고 있어도 아내가 느끼지 못하면, 그건 나 혼자만 아는 사랑일 뿐이었다.
아내에게 필요한 건 내 마음속의 사랑이 아니라,
내가 보여주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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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아내에게서 다시 배운 것
가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그 한마디를 떠올린다.
“당신, 오늘 만든 국은 맛있어.”
아버지도 사랑하는 마음은 있었을 것이다.
다만 표현하는 법을 많이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그 아버지를 보며 자랐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금 늦었지만 배웠다.
좋으면 좋다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법을.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억지로 하던 행동이 반복되고,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진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때로는 관계를 지켜주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 시간이 3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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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도 이렇게 변했다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아내의 오래된 지인 부부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아마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결혼 초기의 나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아내에게 뽀뽀를 해주는 것조차 쑥스러워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어색해하던 그 시절의 나를.
그들이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쩌면 믿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이렇게 변했어?’
나도 가끔 내가 신기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은 정말 변할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가다 보면 더욱 그렇다.
나는 3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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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이 끝나고 화면에 다음 회 예고가 떴다.
아내는 리모컨을 찾으려는 듯 소파를 더듬었다.
나는 먼저 아내의 손을 잡았다.
아내가 나를 돌아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조금 더 세게 쥐었을 뿐이다.
화면 속 다음 예고편이 흘러나오는 동안,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30년 전이었다면 나는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어색했던 남자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했던 사랑과, 상대에게 전해지는 사랑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내가 그때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 사람의 손을 이렇게 잡고 있을 수 있었을까.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아내의 손을 느끼며,
나는 아무 말 없이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30년이 걸렸다.
사랑한다고 말하기까지.